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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3-06-03 17:02 조회수 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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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겨례]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24시, 그들과 함께 땀흘린 10일의 기록

사회

인권·복지

나는 레지던트다

등록 : 2013.05.31 20:42 수정 : 2013.05.31 21:45

 

 
지난 5월16일 아침 7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5층 수술실에서 심장혈관외과 4년차 레지던트 신유림(30)씨가 수술 도중 모니터를 보며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뚜뚜뚜뚜’ 울리는 기계음이 높아질수록 상태가 나빠진다는 의미다. 신씨는 사물이 2.5배 더 크게 보이는 ‘루페’를 착용했다. 취재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24시
그들과 함께 땀흘린 10일의 기록

집에 못 가는 의사 선생님, 그렇게 피곤해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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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서 배까지 내려온 70㎝의 절개선에서 빨간 피가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16일 밤 10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병원 2번 수술방에는 다시 베타딘(소독약) 냄새가 가득하다. ‘하행대동맥박리’(대동맥이 아래 방향으로 찢어지는 응급질환)로 오전에 수술했던 50살 여성의 재수술이 몇 시간 만에 시작된 것이다. 헤파린(혈액 응고를 막는 약) 때문이었는지, 환자의 몸속 어디선가 출혈이 계속됐다. 환자의 몸에 소독약을 바르는 심장혈관외과 레지던트 1년차 정선민(28·여)씨와 4년차 유우식(30·남)씨의 어깨 위로 피로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실내온도 18도, 습도 50%로 고정된 수술방의 서늘함에 가볍게 몸이 떨렸다.

5월8일부터 17일까지 이 병원 소속 심장혈관병원 심장혈관외과 레지던트와 똑같이 24시간 병원에서 생활했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심장 전문병원으로 전통적 전공분류체계로는 흉부외과 소속이다. 심장혈관외과, 심장내과, 심장소아과, 심장마취과, 심장영상의학과 등 5개의 과가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색깔로 분류된다. 분홍색 옷을 입은 환경미화원, 보라색 옷을 입은 간호조무사, 초록색 수술복이나 파란색 업무복을 입은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남색옷을 입은 교수들이 일한다.

16일 아침 7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5층 수술실에서 심장혈관외과 소아심장파트 4년차 레지던트 신유림씨(가운데)가 박한기 교수(왼쪽)의 집도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다. 선천성 심장기형이 있던 19살 남자 환자의 응급수술이었다. 심장혈관외과 수술은 보통 집도의와 보조하는 의사 2명, 마취과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한 팀을 이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압박스타킹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병원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두들 ‘레지던트 선생님’이라고 답한다. 입원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의사가 레지던트다. 주치의인 교수가 있지만 수술계획을 잡거나 환자의 상태를 나누는 것은 보통 24시간 병원을 지키는 레지던트다.

환자에게는 다 같은 ‘의사 선생님’이지만 알고 보면 레지던트의 신분은 이중적이다. 수련 과정 중인 ‘수련의’이자 병원과 계약관계에 있는 ‘계약직 노동자’다. 레지던트는 의대를 졸업한 학생이 1년 동안 여러 전공을 돌며 ‘인턴’을 마친 뒤 전공분야를 정해 4년간 임상경험을 쌓는 기간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합쳐 ‘전공의’라고 부른다. 레지던트 4년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의가 돼 해당 전공으로 개원할 수 있다. 환자의 몸이 질병과 마주하는 전장이라면, 현장을 지키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가 전공의다. 그만큼 전공의가 할 일은 많고도 중요하다.

병원 생활을 시작한 첫날, 병원에서 내준 파란색 업무복을 입는 순간 나의 신분은 달라졌다. 환자나 보호자와 구분돼 의사나 간호사와 함께 ‘통제구역’인 중환자실과 수술방을 자유롭게 출입했다. 조사만 한국어일 뿐 영어로 된 의료용어들로 이어진 문장을 구사하는 의사들과 소통은 쉽지 않았다. 레지던트들과 함께 다니며 보고 듣고 물었다. 레지던트의 하루는 길었다. 아니, 병원에 머문 열흘이 긴 하루처럼 느껴졌다.

“30분 자고 일어났는데 산소가 3이 올라갔어. 10이 올라가려면 얼마나 자야 하나. 하하.”

이날 밤 12시 무렵 심장혈관외과 중환자실에서 졸다 일어난 소아심장 분야 4년차 신유림(30)씨가 말했다. 오전에 심실중격결손(VSD)과 폐동맥협착(PS)으로 수술을 한 생후 20일 된 아기 환자 옆에 아예 책상을 가져다 놓고 지키던 중이었다. 아이의 산소포화도는 100% 기준 72%밖에 되지 않았다. 산소가 적으면 머리나 콩팥, 간이 손상될 수도 있어 다시 수술해야 하는 위중한 상황. 신씨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모니터에 뜨는 에이비지(ABG·동맥혈 가스 분석) 수치를 확인하며 환자 옆에 붙어 있었다.

서너 시간 동안 그렇게 자다 깨다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아침회진을 준비할 시간이다. 전날 밤 11시에 방문 아래 빈 공간으로 들어온 종이 한 장이 아침회진 준비 자료다. 환자의 기본 상태(간·콩팥 수치, 동맥혈산소검사 등)가 적혀 있다. 새벽에 촬영한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서둘러 확인하고 환자의 몸에 드레싱(수술 상처를 관리)을 끝낸 신씨가 압박스타킹을 신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수술하거나 환자를 볼 때 늘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압박스타킹을 신는다.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7시30분 언제나 그렇듯 아침회진엔 긴장감이 돈다. 소아심장분야의 박한기(47) 교수는 신씨와 인턴에게 환자에 대해 되물었다.

“(이 환자는) 왜 입원했어?”

인턴이 답을 하지 못하자 교수는 화를 냈다.

“엑스레이 사진 보면서 전날과 환자의 달라진 점을 알려줘야지. 환자 파악 안 됐으면 나오지 마.”

신씨도 덩달아 눈치가 보인다. 긴장한 목소리로 신씨가 말을 받았다.

“피오디(POD·수술한 날 이후부터) 열흘째인 환자고 오늘 퇴원 예정입니다. 쿠마린(항응고제) 2.5㎜ 이상 먹으면서 아이엔아르(INR·피 묽은 정도) 2점 이상 잘 유지되고 있는데 아침에 1.8입니다.”

“쿠마린은 어제 2.5㎜ 넣었나? 떨어질 것 같은데… 체격을 고려해서 5㎜ 더 넣지.”

“네.”

개목걸이라 부르는 전화기로
소아청소년과의 ‘콜’이 왔다
혈관 못 찾아 잘못 찔렀는지
마르고 작은 네살 소녀의
허벅지와 손목이 성하지 않았다
드디어 2시간 만에 혈관을 잡았다

1년 인턴 뒤의 레지던트 4년은
의사의 삶을 익히는 시간이다
저연차는 응급실 당직을 맡고
고연차는 수술을 배운다
인기 없는 흉부외과의
레지던트 확보율은 50% 미만

회진은 주치의를 선두로 펠로(전임의), 레지던트, 인턴, 간호사 등이 미리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병원 내를 돌아다니며 순서대로 환자를 만나는 시간이다. 환자와의 대면접촉이 가장 많은 레지던트가 안내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을 가장 가깝게 마주하고, 공식적으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된 짧은 시간은 수련의에게도 생생한 교육현장이다. 레지던트는 의사로서 갖춰야 하는 덕목을 교수를 보며 배운다. 회진 후 레지던트들로부터 꽃바구니를 받은 박 교수가 말했다.

“교수로서 레지던트들이 의학지식과 수술능력을 갖추길 원하고요. 또 환자나 보호자, 동료 의사나 간호사와 의사소통을 하는 법을 배우길 바랍니다. 심장외과 의사는 팀의 리더가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리더십을 발휘해 좋은 결과를 내야만 하는 것은 결국 집도의예요.” 회진이 끝난 뒤 신씨는 교수가 내린 오더(지시사항)를 인턴, 전문간호사 등과 함께 숙지하고 이행했다.

선임 레지던트 1명의 환자는 30명

레지던트 생활 4년은 몸으로 병원생활, 의사로서의 삶을 익히는 시간이다. 교수, 펠로, 간호사 등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 속에서 위계가 생기고 진료와 수술을 함께 하면서 동류집단의식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수련 병원과 전공에 따라 처한 사정이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저연차는 병동의 환자 등 상대적으로 위중하지 않은 환자와 수술 전후의 환자 이동 그리고 응급실 당직을 주로 담당한다. 고연차는 수술실에서 직접 수술 기술을 배우고 중환자의 치료 계획을 결정하며 의사로서 판단력을 익힌다. 응급실 당직을 서는 저연차들의 업무강도가 심하다. 비인기학과인 흉부외과(심장혈관외과) 레지던트의 노동조건은 특히 열악하다.

8일 신씨는 지난 주말에 집에 간 1년차 레지던트가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며 말을 꺼냈다.

“전화해보려고 하는데… 솔직히 해도 할 말이 없어요. 이해되거든요.”

결국 그는 사직서를 냈다. 동기인 정선민씨도 딱히 할 말이 없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기운 좀 빠지죠.”

이 병원 심장혈관외과의 레지던트 정원은 16명이지만 현재 6명뿐이다. 소아심장분야는 신씨 혼자였다. 선임 레지던트(4년차)인 신씨는 20명가량의 환자들을 보며 저연차가 하는 드레싱, 튜브제거 등 처치까지 직접 처리했다. 협진환자까지 합하면 30명이다. 일손이 부족한 전공의를 대신해 전담간호사가 병동 환자를 돌보거나 바쁜 날에는 인턴이 오더를 대신 내리기도 했다.

노동시간은 주 120시간 이상이었다. 중환자실 옆 5평(16㎡) 남짓한 방의 이층침대에서 쪽잠을 잔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탈의실이나 수술방 샤워실에서 씻고 휴게실에서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다. 일요일 낮에 집에 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병원에 돌아온다. 이번 주말에도 자유시간은 딱 18시간이었다.

흉부외과 레지던트의 스트레스를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지원뿐이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은 급여보다 개인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손이 귀한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학회나 정부에서 보전을 해줘 타과에 비해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더 받지만 레지던트 확보율이 50%가 안 된다. 과거 수익이 좋아 인기 과로 통했던 ‘피안성’은 ‘정재영’으로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응급이 적고 일이 고되지 않은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의 인기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위협한다는 얘기다.

신씨는 주말에 쉬지 못하고 병원에 있느라 친구들 결혼식에 못 가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병원에 매여 있다 보니 세상 소식에 뒤처지기 쉽다. 9일 아침 휴게실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던 4년차 유우식씨가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추신수 선수의 경기화면을 보며 물었다.

“추신수가 투수야 타자야?”

함께 라면을 먹던 전임의가 크게 웃으며 핀잔을 줬다. 신씨가 재밌어하며 말을 받았다.

“어제 수술동의서에 사인하면서 어버이날인 걸 알았지 뭐야. 결국 바빠서 부모님께 전화 못 드렸어.”

나로호가 발사됐다는 것도 이틀이 지나서야 환자 보호자에게서 들었다는 레지던트에게 병원 밖에서 벌어지는 뉴스는 당장의 잠과 휴식보다 멀리 있었다.

저녁 회식하다 응급 수술 생겨 전원 병원행

아침회진이 끝나면 오전 9~10시부터 다시 환자들 곁을 지켜야 한다. 하얀 가운에는 꽂힌 가위로 익숙하게 거즈를 자르고, 테이프를 잘라 덮고, 자가호흡을 시도하기 위한 위닝(기도탈관)을 하거나, 가슴에 꽂힌 튜브를 뽑고, 처방을 내리는 등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신씨는 “한번이라도 더 환자를 보면 보이는 게 많다”며 부지런하게 심장혈관외과 중환자실과 특별관찰실, 신생아중환자실, 병실을 뱅뱅 돌았다.

병원에서는 ‘콜’이 울리면 일이 시작된다. 10일 오전 11시45분 처치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원 내에서만 사용하는 신씨의 전화기가 울렸다. 개목걸이라고 불리는 ‘콜’이었다. 본관 건물 중환자실에 있는 4년5개월 된 여아의 정맥과 동맥을 잡아달라는 소아청소년과의 협진 의뢰였다. 도착해보니 새벽 4시부터 아이의 혈관을 찾느라 밤을 새운 듯한 레지던트 2년차가 지친 듯 멍한 눈으로 잠든 환자 곁에 서 있다. 잠든 아이는 허벅지며 손목이며 성한 곳이 없었다. 오늘도 바쁘다고 말을 건네자 신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콜이 겹치지 않으면 일진이 괜찮은 날이에요. 일이 한꺼번에 터지면 진짜 정신없어요.”

간호사들이 급하게 수술 준비를 했다. 신씨가 수술용 가운과 장갑을 착용하고 아이의 몸에서 혈관을 잡기 시작했다. 마른 몸의 작은 소녀의 팔다리에서 혈관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시간 동안 수십 번의 바늘을 찔렀다. 겨우 혈관을 찾은 신씨의 얼굴은 여전히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타과 레지던트와 주니어 스태프들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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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제일 바쁜 사람 물으면
모두 ‘레지던트 선생님’ 꼽아
24시간 내내 병원에 머물며
이층침대에서 매일 쪽잠을 잔다
한 1년차 레지던트는
집에 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피안성’이 ‘정재영’으로!
응급이 적고 일이 덜 고된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의 인기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시에스(CS·흉부외과)없었으면 어쩔 거야.”

감사 인사를 받으며 중환자실을 빠져나오는 길에 신씨가 말했다.

“패혈증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 몸 안의 수분이 피하지방층으로 빠져서 혈액순환량이 워낙 적어요. 혈압도 낮아서 안 잡히는 상태였는데, 중환자라 동맥관 압력을 재야지만 혈압 관리가 되거든요. 큰 혈관은 흉부외과에서 잘 다루니까 부탁이 자주 들어와요.” 못 받은 전화를 다시 연결했다. 이번에도 수술이었다. 수술방으로 뛰어갔다.

9일 오후 신씨는 속눈썹이 유난히 긴 생후 74일 된 여자아이 옆에 있었다. 선천적으로 폐동맥판막에 구멍이 없어 피가 통하지 않는 아이는 우회혈관을 만들어 피를 통하게 하는 라스텔리 수술을 받았다. 오늘은 심장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 열어뒀던 가슴을 닫는 추가 수술이다. 신씨가 집도의의 첫번째 어시스턴트였다. 몸무게 약 2㎏의 작은 아이 가슴을 갈라 속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있는 자두알만한 크기의 심장이 인사하듯 움직였다. ‘뚜뚜뚜’ 기계음만 가득한 수술실에서 루페(수술용 돋보기 안경) 너머의 신씨 눈이 매섭게 빛났다.

소아심장수술을 두고 간호사들은 ‘신과의 싸움’이라고도 표현했다. 제멋대로 기형인 심장을 2심방 2심실의 기능을 갖춘 심장으로 수공예하듯 혈관을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레지던트마다 하루에 적게는 한 건 많게는 세 건까지 수술이 있었다. 5~6시간 걸리는 수술시간 탓에 점심을 거를 때도 많지만, 레지던트들이 휴식 이외 가장 좋아하는 일이 수술이라고 했다.

“수술하고 나면 찌뿌둥한 몸이 좋아지는 기분이에요.”

수술실에서 느껴지는 긴장된 분위기가 좋아서 힘들다는 흉부외과를 선택했다는 신씨는 수술할 때 손이 떨릴가봐 좋아하는 커피는 밤에만 마실 정도로 수술에 욕심이 많다. 동기인 유씨도 ‘수술에 들어가면 피로가 사라진다’, ‘칼이 들어갈 때는 짜릿하다’고 말했다.

응급수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졌다. 소아심장분야의 팀이 회식을 하러 나간 10일 금요일 밤에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 ‘급’ 응급수술 생겼어요ㅠ” 생후 사흘 된 아기 환자의 폐가 갑자기 나빠진 것이다. 병원에 돌아가 밤 11시까지 이어진 수술에 모두가 녹초가 됐다. 함께 있던 열흘 동안 신씨에게 응급수술이 없는 날은 거의 없었다.

밤낮없는 레지던트 생활 속에서 레지던트 자신의 힘만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지키긴 어려워 보였다. 전공의 수가 적어 힘들어진 근무환경은 의료서비스의 질과 바로 연결됐다. 잠결에 내린 오더를 기억하지 못하는 식의 작은 실수도 여러 번 있었다. 여성으로 이 병원에서 전공의를 마친 성인판막분야의 이삭(40) 교수는 자신이 전공의였던 2000년대 초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레지던트의 노동·교육 환경이 일의 집중을 방해할 것이라고 했다.

“4년차 때에야 남녀 전공의의 방을 구분했어요. 그 전에는 그냥 섞여서 자는 거예요. 다른 건 몰라도 여의사들 생리휴가는 있었으면 좋겠는데… 레지던트 한 명이 임신이라도 하면 다른 의사들의 업무량이 많아질 거예요. 생명과 직결되는 예민한 수술이라 집중할 땐 집중하고 쉴 땐 쉬어야 하는데, 업무 때문에 휴가 쓰기가 쉽지 않죠.”

환자 상태를 파악해 보고한 뒤 레지던트의 판단을 묻는 중환자실 간호사들도 새벽녘에야 곯아떨어진 레지던트를 깨우기가 불편하다. 한 18년차 간호사가 말했다. “잠에 곯아떨어져 전화받지 못하는 레지던트들도 있긴 있어요. 진짜 급할 때는 달려가 직접 깨워서 중환자실로 데려오죠.”

심장혈관병원 유경종 원장은 흉부외과 레지던트 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다. 기업형 병원이 들어선 뒤 병원들은 기업문화를 병원에 도입했다. 같은 의사라면 전임의보다 임금이 싼 전공의를 많이 고용했다.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기업형 병원이 많아지면서 (직원의 노동조건보다 고객 중심 경영에만 치우치는) 서비스업의 성격이 강해졌어요. 환자들의 의사 평가가 중요해진 시대인 만큼 의사가 해야 할 일은 많아졌는데 흉부외과 전공의 수가 너무 적어요. 흉부외과학회에서 통계를 내보니, 은퇴하는 스태프(교수)보다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 수가 적다는 거예요. 그러니 전공의도 힘들고 환자도 더 나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거죠.”

2개월 이상의 출산 휴가는 금기사항

레지던트는 병원의 직원이기도 하다. 레지던트의 근무형태는 야근과 당직을 밥 먹듯이 하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고민과 비슷했다. 여타 회사원처럼 레지던트는 휴가를 ‘눈치껏’ 사용한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휴가도 2개월 이상 쉬는 것은 ‘튀는’ 행동이다. 6개월을 쉬면 진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병원 교육수련부는 레지던트의 당직시간에 따라 정액이 아닌 수당으로 당직수당을 지급하라는 복지부의 권고를 지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24시간 내내 병원에 머무는 흉부외과 레지던트의 경우 시간외근로가 명확하지 않으며 전공마다 사정이 달라 당직수당에 대한 기준을 잡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기자가 겪은 레지던트는 24시간 중 평균 20시간 이상을 일했다.

병원의 낮은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시장같이 번잡했지만, 중환자실과 응급실만 밝게 불을 밝힌 밤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를 돌보느라 지친 보호자는 병실 침상 아래에서 혹은 응급실 앞 의자에서, 레지던트들은 숙소에서 쪽잠을 잔다. 병원의 밤은 레지던트를 더 많이 필요로 했다.

16일 새벽 1시 수술방에서 내려와 쪽잠을 자던 1년차 정씨의 콜이 울렸다. 자다 깬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리고 다시 잠든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또 콜이 왔다. 이번엔 응급실이었다. 54살 남자 기흉(폐에 구멍이 생겨 늑막강 안에 공기가 고이는 질환) 환자가 왔으니 가서 공기를 빼달라는 부탁이었다. 정씨가 여전히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아팠으면 일찍 오지, 아니면 좀더 참고 내일 아침에 오든가. 왜 새벽 2시에 오냐고. 씨×.”

오늘 하루 돌본 환자의 경과기록지를 작성하던 선배 신씨가 정씨를 다독였다.

“나도 1년차 때 그게 제일 힘들더라. (환자들이) 꼭 새벽 2시에 오더라.”

자리에서 일어난 정씨가 찡그린 얼굴로 모니터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했다. 정씨의 눈이 커졌다. 공기에 밀려 찌그러진 폐 사진이 심상치 않았다.

“많이 찼네. 빨리 가야겠다.”

하얀 가운을 입고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 2개를 가로질러 응급실에 도착했다. 언제 욕을 했냐는 듯 환자와 보호자부터 안심시키고 오른쪽 가슴을 절개해 튜브를 뽑아 가슴에 차 있던 공기를 뺐다. 튜브가 담긴 물통에서 뽀글뽀글 방울이 올라왔다. 보호자에게는 “성인이 되어서 처음 기흉이 발생한 환자는 폐질환이 의심되니 시티(CT)를 찍고 확인하세요” 하고 당부했다.

응급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하는 말은 언제나 같다.

“가서 잘 거야. 씨×.”

시계는 새벽 1시2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난 14일에는 뒤에서 들이받은 차 때문에 핸들에 가슴을 부딪혀 중간가슴 빗장뼈가 부러진 56살 남자 환자 때문에 새벽 4시까지 응급실을 들락날락했으니, 이날은 그래도 운이 좋은 셈이다. 그 환자는 진통제 외에 달리 받을 치료가 없는데도 입원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피곤해서 어떡하냐는 위로에 정씨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나도 성깔이 있어서 일단 풀긴 풀어야 해요. 그래야 환자 앞에서 욕을 안 하죠.”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듯 정씨의 발이 질질 끌렸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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