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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12-12-10 11:16 조회수 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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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앙일보] 전기톱·메스 든 그녀 매일 두 개의 심장 살린다

전기톱·메스 든 그녀 매일 두 개의 심장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2012.12.08 00:53 / 수정 2012.12.08 00:53

[사람 속으로] ‘300g 심장’을 지키는 세브란스 여의사 4인

왼쪽부터 11명뿐인 심장외과 여의사 이삭, 심장마취 20년 곽영란, 영상의학 전문의 김영진, 소아심장과 20년 정조원.

일반인은 주로 디자인으로 차를 선택하지만 고수는 엔진을 살핀다. 엔진 상태가 자동차의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심장은 사람의 엔진이다. 그래서 300g에 불과한 이 장기가 운동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이 사망했다고 판단한다.

 하루 10만 번씩 심장이 제대로 뛸 수 있도록 돌보는 여성들이 있다. 십수 년간 심장혈관병동에서 환자들과 울고 웃어온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여성 심장 전문의 4인방이 그들이다. 여의사가 전체의 20% 이상이지만 일이 거칠고 체력을 요하는 심장 전문 여의사는 아직 많지 않다.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 병동 40명의 의사 중 여성은 단 4명. 곽영란(46·심장마취), 이삭(39·심장혈관외과), 김영진(39·심장영상의학), 정조원(49·소아심장) 교수 등이다. ‘왜 심장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심장이 가장 깨끗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인공호흡기, 수액 투여량 등 체크

 곽 교수는 국내 최초의 심장마취 펠로다. 불모지이던 심장마취 분야는 1990년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이 국내 최초로 문을 열고 미국에서 파견된 심장마취전문의 홍용우 박사가 국내 의사들을 교육하면서 활성화됐다. 곽 교수는 홍 박사의 첫 제자다.

 마취과 의사는 5~6시간 동안 진행되는 심장수술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수술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동시에 외과의사가 수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인공호흡기와 수액 투여량, 배설량 측정 등을 책임진다. 상황에 따라 긴급 조치를 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마취과를 택한 이유는.

 곽: 처음엔 의대 공부에 흥미를 못 느꼈어요. 근데 막상 접해보니까 마취가 참 재밌더라고요. 마취하는 순간부터 수술이 끝나 다시 일어나는 순간까지 환자는 나하고만 소통하는 거니까. 환자가 말은 못해도 심전도·산소포화도·맥박이나 혈압 등으로 자기 상태를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했죠.

 김: 심장 마취는 일이 많잖아요.

 곽: 맞아요. 심장수술은 다른 수술에 비해 몸에 무리가 많아 마취도 훨씬 복잡해요. 수술을 위해선 심장을 완전히 정지시켜야 하는데, 이때 심장 기능이 감소되거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어요. 또 수술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심장을 깨워야 하는데 그때가 마취과 의사가 제일 긴장되는 시간이죠.

 이: 선배 의사들과 수술하려면 힘들겠어요.

 곽: 어린 연차 때는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는 외과의사가 모두 선배들이라 나를 못미더워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국내 최초로 심장마취만 전담하는 펠로였는데도 수술실에 들어가면 ‘너 말고 너희 선생님(홍 박사) 찾아오라’고들 하셨죠.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김: 어떻게 극복했나요.

 곽: 날 믿도록 만드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했죠. 심장 마취만 6년 하고 전임교수가 되고 나니까 그제야 절 인정해 주시더라고요. 지금도 심장병동에 저보다 어린 외과의사는 거의 없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칼잡이’ 이삭 교수에게로 집중됐다. 이 교수는 세브란스 흉부외과의 첫 여성 교수다. 대한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매스를 잡는 심장외과 여의사는 국내에 총 11명. 이 중 6명이 어른 심장을, 5명이 어린이 심장을 수술하고 있다. 2004년 흉부외과 전문의가 된 뒤 8년째 집도하는 이 교수가 6명 중 한 명이다.

심장 수술은 속도전 5시간이면 끝내

●외과의사가 본 심장 분야의 매력은 뭔가요.

 이: 확실히 적성이란 게 있어요. 저는 지지부진한 걸 싫어하고 결과가 눈에 보이는 게 좋아요. 근데 내과는 장기 입원해도 차도가 그다지 눈에 안 띄고 퇴원도 힘든 상황이 많아 힘들었어요. 그게 외과를 선택한 이유죠.

 김: 외과는 주로 암 수술을 많이 하는데.

 이: 암 수술은 ‘잘라내는’ 일이라 장기 기능이 안 좋아지는데 심장은 암이 없는 분야라 ‘고치는’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 후 기능이 놀랍게 좋아져요. 심장판막협착증이 있을 때 판막을 떼내고 인공판막을 넣어주면 심장 기능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거든요.

 곽: 제가 마취의로 이 선생님이랑 많이 들어가는데 수술 참 잘해요.

 김: 그렇죠. 속도가 생명인데, 남들 10시간씩 걸릴 수술도 5~6시간이면 끝내니까.

 이: 심장이 멈춰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복도 늦고 합병증도 많이 생겨 될 수 있으면 빨리 하려고 해요. 심장 수술하는 동안에는 심장에 영양분 공급이 안 되니까요.

 정: 우리가 봐도 정말 대단해요.

 곽: 그래서 천국 가는 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잖아요.

 이 교수는 3~5시간에 걸친 수술을 매일 한두 건씩 해낸다. 대동맥 수술, 판막 수술과 관상동맥 수술을 위해 많을 땐 일주일에 10명의 환자를 본다. 1년이면 200~300회 수술실을 찾는 셈이다. 수술 모자, 마스크와 가운, 수술 장갑을 착용하고 돋보기 안경과 헤드라이트까지 써야 한다. 머리에 무거운 장비를 쓰고 수술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니 목에 근육이 생겼다. 오랜 시간 버티느라 다리도 단단해졌다.

 곽: 목과 팔이 고생 많이 하죠.

 이: 직업병이죠. 어깨랑 목이 남아나질 않아요. 사람들이 만져보고 ‘여자 목이 왜 이렇게 단단하냐’며 놀라요. 팔이랑 손에도 굳은 살이 많고.

정: 여성 환자에 대한 배려도 해주시죠?

이: 보통 가슴 한복판을 가르는데 젊은 여성환자는 가슴 아래쪽으로 작게 열어줘요. 수술은 좀 힘들어도 비키니 입게 해드리려고요.

소독약으로 손톱 사이, 손금 박박 씻어

 이 교수와 곽 교수가 수술 전 반드시 거치는 관문이 바로 심장영상 판독이다. 심장영상의학과 전문의 김영진 교수가 여기서 등장한다. 김 교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으로 찍은 심장영상을 분석해 병의 종류를 판독한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과인데.

‘다들 피부가 좋다’는 기자의 칭찬에 의사들은 “하루 종일 햇빛을 보지 못해서 그렇다”며 웃었다. 이들의 하루는 오전 6~7시에 시작한다. 퇴근은 기약이 없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 레지던트 때 내과에서 제가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했어요. 그때 받은 충격이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더라고요. 병원은 수많은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곳이라 빨리 잊고 다른 환자를 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그래서 영상의학과를 선택했어요. 환자를 직접 대하지 않는 대신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곳이죠.

 곽: 심장 영상도 몰라보게 발전했죠.

 김: 신기술을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예요. 10년 전만 해도 저연차들은 판독대에 필름을 걸어놓고 정리하는 게 주된 일이었는데 4~5년 지나니까 그게 없어지고 컴퓨터로 보기 시작했어요. 또 전엔 심장이 자꾸 움직이니까 의학 영상으로 만들 수가 없었는데 요즘은 순간을 포착해서 심장 상태를 정확히 보여주죠.

 이: 김 선생님 판독이 없으면 수술 시작 안 해요. 그래서 의사들의 의사라고 부르기도 하죠(웃음).

 화제는 자연스레 미용으로 전환됐다.

 정: 김 선생님 네일아트 너무 예쁘게 했네.

 이: 외과의사는 매니큐어 못 발라요. 저도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심장수술할 때 손에 균이 있으면 사망률이 높아지니까. 그래서 수술 전엔 손을 10분씩 씻어요. 소독약으로 손톱 사이사이 손등·손금을 하도 박박 씻어서 겨울이면 손 피부가 남아나질 않죠.

 김: 손에 못 하면 발에라도 하세요.

 이: 저도 패디큐어는 자주 해요(웃음).

병원서 만난 아이들 다 자식 같아

 성인심장뿐 아니라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아이들을 주로 치료하는 정조원 교수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소아심장과 의사인 그는 20년간 아이들과 호흡해 왔다.

●소아과에서 만난 아이들이 다 자식 같겠어요.

 정: 소아심장은 출산 단계부터 진단이 돼요. 심장 잡음이 들리거나 외관상 파랗다거나 호흡곤란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부모님과 의사가 아이를 같이 낳고 키워야 하죠. 얼굴이 바뀌는 것처럼 아이 심장 모양도 계속 바뀌거든요. 성장하는 내내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수술이나 약물치료를 꾸준히 하면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요.

 곽: 심장이 안 좋으면 성장이 더디잖아요.

 정: 네. 애들이 아프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닌데 짠해요. 그래도 입술이 파랗고 전혀 못 먹던 아이들이 심장수술을 받고 발그레한 입술로 웃으며 밥 잘 먹는 모습 보면 정말 행복해요.

 김: 부모님들이 예민해서 힘들겠어요.

 정: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보조 의사를 둔 기분이에요. 부모들이 아이를 계속 관찰하고 평소와 뭐가 다른지 얘기해 주거든요.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안타까워요. 내가 낳은 애인데도 건강하지 못하니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멀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낳은 아이는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 그때마다 ‘관리만 잘하면 완치도 가능하고 학교 생활에도 지장이 없다’고 부모들을 설득하죠.

 이: 저는 보호자와 환자가 다 치료하고 싶어하는데도 형편이 어려울 때가 제일 마음 아프던데.

 정: 소아심장도 치료비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들어요. 저소득층이면 재단이나 후원을 통해 치료하니까 차라리 나은데 차상위계층은 방법이 없어요. 수술을 잘할 수 있는데도 돈이 없어 미루다 보니 다른 기형이랑 겹치고, 부모가 감당하기 두려워서 아이를 버리기도 하고…. 다문화 가정 아이도 부모와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치료가 늦어지기도 해요. 심장병은 수술하면 잘 키울 수 있는 만큼 사회적 지원과 배려가 아쉽죠.

 이들에게 ‘여자로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묻자 으레 ‘출산과 육아’ 얘기가 나왔다. 직장여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민이 이들에게도 있었다.

 곽: 아이 키우며 병원 일 하는 게 힘들었죠. 그건 모든 직장여성의 공통된 고민이니까. 딸 아이가 최근 대학에 진학했는데, 엄마 아빠를 보고는 ‘세상 사는 방법이 여러 가진데 엄마 아빠처럼은 안 살겠다’며 의대 아닌 다른 과를 지원하더라고요.

 정: 제가 아이 낳던 10여 년 전엔 출산휴가가 4주였는데 지금은 3개월로 늘었어요. 힘들 땐 ‘필리핀 의사는 애 낳고 3일 만에 다시 일한다는데 그에 비하면 낫지’라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집안 반대도 많았죠. 근데 왜 반대하면 더 하고 싶은 것 있잖아요(웃음). 제가 레지던트하던 90년대 초만 해도 선배 언니들이 ‘남자보다 3배는 일해야 비슷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던 시절이었어요. 3배는 못 해도 선배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죠.

 2시간이 넘게 이어진 이들의 수다는 ‘후배 여의사들이 심장 분야처럼 힘들지만 의미 있는 일에 더 많이 뛰어들길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가사 노동과 회사일을 병행하며 불모지를 개척해 온 이들의 고생이 뒤따라올 여의사들에게 길이 되길 바라면서.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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